셔츠 단추를 풀고 손을 허벅지로 슬쩍 미끄러뜨리며 "우리는 마지막 남은 두 마리 쥐다, 서로를 잡아먹거나 다른 모두를 잡아먹거나"라는 대사—《007 스카이폴》(Skyfall)에서 라울 실바가 본드를 심문하는 이 장면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시리즈 역사상 가장 기억에 남는 악역 순간 중 하나로 꼽힌다. 하비에르 바르뎀(Javier Bardem)은 BFI 런던 영화제 대담에서 이 미묘한 전환이 원래 대본에 없던 설정이며, 자신이 직접 감독 샘 멘데스에게 제안한 것이라고 직접 인정했다.
"우리가 함께 대본을 읽을 때, 멘데스는 제가 이 캐릭터의 성적 정체성에 대해 시도하고 싶었던 것에 매우 열려 있었어요," 바르뎀이 회상했다. "제가 말했죠, 모든 악당이 세상을 파괴하고 싶어하지만, 좀 더 개인적인 무언가가 있다면 어떨까요? 세상을 파괴하는 것 외에도, 그는 본드와 자고 싶어한다면요." 멘데스는 이후 이 새로운 해석이 가능한지 제작사에 확인해야 했고, 바르뎀은 "제작사가 용감했다"며 결국 이 장면을 허락받았다고 말했다.
극 중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가 연기한 본드는 의자에 묶인 채, 실바가 그의 셔츠를 풀며 "결국 모든 것엔 처음이 있는 법이지"라고 말하자 본드는 "이게 내 처음이 아니란 걸 어떻게 아나"라고 응수한다. 바르뎀은 이 장면이 잊히지 않는 이유가 "본드를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상황에 몰아넣었고, 그가 거기서 벗어나는 방식이 멋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담에서 바르뎀은 촬영 현장에서 겪은 또 다른 순간도 언급했다—실바가 감금되어 심문받는 장면을 촬영할 때, 그는 갑자기 대사를 잊어버렸다. "그제야 제가 007 영화를 찍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주디 덴치가 M을 연기하는 걸 보고, 제임스 본드가 제 앞에 서서 저를 바라보고 있는데, 속으로 '젠장, 나 지금 본드 영화 찍고 있네'라고 생각했죠."
차기 007 캐스팅과 관련해, 제작자 에이미 파스칼(Amy Pascal)은 앞서 올해 말까지 결정이 날 것이라고 밝히며 다니엘 크레이그를 "넘어서기 매우 어려운 상대"라고 표현했고, 새로운 배우는 "완전히 다르면서도 흥미진진한" 인물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보도에 따르면 톰 홀랜드(Tom Holland)는 마블 계약 때문에 후보에서 제외됐고, 태런 에저턴(Taron Egerton)은 스스로 하차 의사를 밝혔으며, 캘럼 터너(Callum Turner)는 레드카펫에서 관련 질문을 피했다. 게리 올드먼(Gary Oldman)은 《슬로우 호시스》 공동 출연 배우 잭 로던(Jack Lowden)을 지지했고, 대니 보일(Danny Boyle)은 잭 오코넬(Jack O'Connell)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새 007 영화는 드니 빌뇌브(Denis Villeneuve)가 연출하며, 각본은 스티븐 나이트(Steven Knight)가 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