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렌 미로이닉(Ellen Mirojnick)은 자신이 그리는 최고의 결과물이란, 관객이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그 의상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의 신작 《오디세이(The Odyssey)》 의상 디자인을 막 마친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치고는 역설처럼 들리지만, 사실 이것이 그녀가 일하는 방식의 핵심이다. 이 영화는 이미 미국에서 개봉했고, 일본에서는 9월 11일 공개될 예정이다. 이는 《오펜하이머(Oppenheimer)》 이후 미로이닉이 놀란과 두 번째로 호흡을 맞춘 작품이다.
2024년 9월, 감독과 그의 아내이자 프로듀서인 엠마 토마스(Emma Thomas)가 그녀를 찾아와 《오디세이》라는 제목의 대본을 건넸다. 몇 시간의 논의 끝에 미로이닉은 놀란이 원하는 방향을 파악했다. 판타지가 아니라 리얼리즘이라는 것. 다만 여기서 말하는 리얼리즘은 《오펜하이머》처럼 철저한 시대 고증을 따르는 것과는 다르다. 《오디세이》는 특정 역사적 시기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녀의 접근법은 먼저 텍스트를 읽고, 그 다음 역사 속으로 들어가고, 마지막에 신화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목표는 '시대를 초월한' 고대의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었지, 박물관 진열장 속 복원 의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맷 데이먼의 영웅: 변화를 감추는 옷, 드러내지 않는 옷
맷 데이먼(Matt Damon)이 연기하는 오디세우스는 늙어가고, 위장하고, 적응하고, 변화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영웅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는 주인공이 아니다. 미로이닉은 관객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이런 변화를 의상으로 표현해야 했다. 그녀가 내세운 키워드는 '미니멀리즘'이다. 가죽, 청동, 리넨 세 가지 소재를 서로 조합해, 같은 단순한 실루엣에서 다양한 모습을 끌어냈다. 이를 통해 힘과 취약함, 갑옷을 벗은 뒤의 피로감, 그리고 긴 여정이 남긴 손상을 표현했다.

젠데이야의 아테나, 앤 해서웨이의 페넬로페: 두 가지 '조용한 힘'
영화 속 여신 캐릭터는 젠데이야(Zendaya)가 아테나 역을 맡았다. 놀란의 방향은 명확했다. 여신은 구름 위에 떠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 세계에서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캐릭터여야 한다는 것. 아테나는 대사가 극히 적고, 대부분 배후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역할이다. 그래서 미로이닉은 지성과 전략적 감각을 의상에 담아냈다. 리넨을 여러 겹으로 겹쳐, 드레이핑으로 표정을 만들어내며 다양한 장면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했다.
앤 해서웨이(Anne Hathaway)가 연기하는 왕비 페넬로페는 또 다른 길을 걷는다. 그녀는 액션형 캐릭터가 아니라 조용한 전략가다. 미로이닉은 그녀의 의상에 기억과 의식, 자제력, 그리고 시간의 흐름을 담고자 했다. 페넬로페의 의상에는 이타카 왕실을 상징하는 보석빛 톤을 사용했고, 그녀가 직접 베를 짜는 인물이라는 설정에 맞춰 원단 자체에 신성한 의미를 부여했다. 질감과 드레이프가 곧 그녀의 조용한 힘을 표현하는 언어였다. 이야기 후반부, 페넬로페가 화살로 표적을 맞추는 자에게 자신과의 결혼을 허락하겠다고 선언하는 장면에서는 짙은 청록색의 몸에 딱 맞는 드레스를 입었다. 미로이닉은 목 부분을 그녀를 보호하는 방패처럼, 세밀한 주름은 또 하나의 갑옷처럼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각지에서 청혼을 위해 몰려든 남자들은 '무질서한 무리'로 디자인됐다. 그중 로버트 패틴슨(Robert Pattinson)이 연기한 안티노우스는 최대 악역으로, 디자인 키워드는 '과잉'이다. 그는 욕망에 따라 움직이며 남의 재산과 권력을 당연하게 빼앗는 인물로, 지나친 장식성은 곧 다가올 암흑시대를 예고한다.
촬영은 육지와 바다, 인간 세계와 신의 세계를 넘나들며 여러 촬영지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미로이닉은 그 시기를 마치 일곱 편의 영화를 동시에 찍는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대부분의 의상은 촬영 현장에서 직접 제작됐으며, 각 촬영지마다 전문 재단사와 수선, 봉제 인력을 별도로 고용해 대응했다. 외딴 지역과 험난한 환경이 제약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완성품에 거친 진정성을 더해주었다.
"관객이 의상을 보지 못하길 바란다"는 그 말로 돌아가면, 미로이닉 본인도 영화를 두 번 관람했지만 자신이 디자인한 옷들을 거의 알아채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녀에게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성공의 증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