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얼 하나를 완성하려면 수백에서 수천 번의 타격이 필요하다. 장인이 작은 망치나 광택 처리된 스틸 펀치를 들고 한 번씩 평면을 두드려 굴곡을 만들어내는데, 그렇게 새겨진 텍스처는 어떤 때는 달 표면처럼, 어떤 때는 나무껍질처럼, 또 어떤 때는 얼어붙은 물결처럼 보인다. 이 수작업 해머링(hammering) 공예는 역사가 오래됐지만, 워낙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라 과거에는 거의 최고급 시계에만 등장했다. 그런데 최근 스타일이 완전히 다른 세 대의 시계에 동시에 나타났고, 가격대도 크게 벌어졌다.
쿠알라룸푸르에 본사를 둔 독립 워치메이커 Ming은 다이얼이나 케이스에 신선함을 불어넣는 방법이 늘 풍부했다. 창업자 Ming Thein은 과거 사진 기술을 활용해 시침 위치에 따라 다이얼이 컬러에서 블랙으로 바뀌게 만들었고, 3D 프린팅 메시 스트랩도 시도한 바 있다. 이번에 그가 협업 상대로 고른 곳은 Royal Selangor, 1885년 설립돼 주얼리와 트로피, 테이블웨어로 유명한 말레이시아의 주석 공방이다. 주석은 다이얼 소재로 거의 쓰이지 않지만, Ming Thein이 눈여겨본 것은 바로 이 소재가 두드려졌을 때 드러내는 표정이었다.
두 브랜드가 함께 내놓은 37.06 Royal Selangor는 88대 한정으로, 케이스는 티타늄을 쓰고 주석 다이얼은 수작업으로 두드려 만들었다. 타격 한 번마다 표면에 작은 골이 생기면서 전체적으로 달 표면 같은 모습이 되고, 수작업이기 때문에 모든 시계가 서로 다른 모양을 갖는다. 가격은 1만 달러 이하로 맞췄다. 과거 하이엔드 시계에만 등장했던 해머링 공예를 상대적으로 접근 가능한 입문 버전으로 만든 셈이다.
Anoma의 A1 Prehistoric은 다른 길을 택했다. 엄밀히 말하면 해머링이 아니라 수작업 조각(engraving)이지만, 시각적 효과는 마찬가지로 유기적인 구덩이와 골 형태로 나타난다.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 하나를 완성하는 데 장인 손으로 5시간이 걸린다. Anoma는 원래 삼각형 케이스라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이름을 알린 브랜드인데, 이번 Prehistoric으로 브랜드 정체성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렸다. 100대 한정, 대당 약 3,900달러로 나왔고 이미 전량 완판됐다.
가격대의 반대편 끝에는 Parmigiani Fleurier가 브랜드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내놓은 Carillon Tourbillon이 있다. 전 세계 단 5대뿐이다. 이 시계는 19세기 Perrin Frères 회중시계에서 디자인 영감을 받았으며, 1분 투르비용과 4개의 음차·4개의 해머로 구성된 미뉴트 리피터 기구를 탑재했다. 무브먼트는 핸드와인딩 방식이며 마감이 극도로 정교하다. 하지만 진짜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Morning Blue 다이얼이다. 수작업으로 두드린 표면이 무브먼트 속 구불구불한 음차를 더욱 입체적으로 돋보이게 하고, 케이스에 새겨진 직선 홈과도 서로 조응한다.
해머링이나 조각이 귀한 대접을 받는 이유는 기계 프레스가 아니라 장인이 한 번 한 번 직접 완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완성품마다 유일무이하며, 기법에 따라 돌, 나무껍질, 물결, 눈밭 같은 질감을 재현할 수도 있다. 과거 이 공예는 거의 하이엔드 시계의 전유물이었지만, 이제는 Ming의 37.06 Royal Selangor를 시작으로 1만 달러 이하로도 진짜 수작업으로 두드려 만든 다이얼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