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홀랜드가 《스파이더맨: 뉴 데이》에서 다시 한 번 진화하기 전, 스파이더맨은 이미 한 번 진화한 적이 있다. 그것도 완전히 다른 종으로. 1978년, 일본 도에이 TV는 총 41화짜리 실사 특촬 시리즈 《스파이더맨》을 방영했다. 주인공 이름은 피터 파커가 아니라 야마시로 타쿠야였고, 직업은 오토바이 라이더이자 세계 격투기 챔피언이었다. 그는 싸우기 전 적 앞에서 포즈를 잡고 특유의 대사를 읊었으며, 결정적인 순간에는 거대 로봇을 조종해 마무리했다. 겉모습만 보면 슈퍼 전대물인데 스파이더맨의 껍데기만 쓴 셈이었다.
이 모든 것은 1970년대 말 도에이와 마블이 맺은 협정에서 시작됐다. 3년간 서로의 캐릭터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계약이었다. 도에이는 스파이더맨을 가져갔고, 같은 논리로 자체적인 캡틴 아메리카도 만들어 이름을 '재팬 캡틴'으로 바꿨다. 도에이는 이후 극장판도 제작했는데, 스토리상 TV판 10화와 11화 사이에 위치해 이 평행우주의 정사(正史)를 보완하는 역할을 했다.
시간을 거슬러 1962년 8월로 가보면, 스파이더맨이 만화에서 처음 등장한 것은 사실 마블의 의도적인 실험이었다. 그 전까지 청소년 캐릭터는 성인 슈퍼히어로의 조수 역할만 할 수 있었지만, 스파이더맨은 등장하자마자 주인공이 된 최초의 청소년 히어로였다. 거의 모든 버전에서 반복되는 그 대사, "힘이 클수록 책임도 크다"는 최초의 스파이더맨 만화 마지막 컷의 대사에서 나온 것이다. 나중에 만들어진 명언이 아니라 처음부터 심어져 있던 문장이었다.
애니메이션 속 스파이더맨, 영화보다 더 많이 틀렸다
영화에 비해 스파이더맨은 사실 애니메이션에 더 자주 등장했다. 1967년부터 2017년까지 총 8편이 제작됐다. 1967년 첫 애니메이션 《스파이더맨》은 예산 부족으로 로고 디자인이 '다리 6개짜리 거미'로 잘못 그려졌고, 시즌 1 전체가 같은 틀을 그대로 사용해 다리가 6개인 채로 방영됐다. 이후 두 시즌에서야 8개로 수정됐다. 하지만 이 애니메이션이 남긴 주제곡 멜로디는 훗날 《스파이더맨: 홈커밍》과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에 그대로 사용됐다.
1999년작 《스파이더맨 언리미티드》는 피터 파커를 평행 세계 '반지구'로 보내는 설정으로, 스토리 평가는 나쁘지 않았지만 당시 막 인기를 끌기 시작한 《포켓몬》과 시간대가 겹치면서 시청률 부진에 시달렸고 결국 한 시즌만에 종영됐다. 2008년 《스펙타큘러 스파이더맨》은 초반 반응이 좋았지만 디즈니의 마블 인수 이후 판권 소송이 정리되지 않아 두 시즌만 방영되고 세 번째 시즌이 취소됐다. 2012년 《얼티밋 스파이더맨》은 디즈니가 애니메이션 판권을 확보한 뒤, 실사판 《어벤저스》에 스파이더맨이 합류하기 전까지의 임시 방편이었다. 2016년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야 실질적으로 문제가 해결됐고, 2017년 애니메이션판은 실사 영화 유니버스에서 다루지 않은 기원 이야기를 곧바로 보완했다. 같은 해 개봉한 영화가 바로 《스파이더맨: 홈커밍》이다.
참고로 '최초의 스파이더맨 영화 3부작' 주인공도 토비 맥과이어가 아니다. 니콜라스 해먼드가 그 주인공으로, 1977년부터 1981년까지 《스파이더맨》, 《스파이더맨 스트라이크 백》, 《스파이더맨: 드래곤의 도전》 세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토비 맥과이어판보다 무려 20여 년이나 앞선 시기였다. 지금 톰 홀랜드가 서 있는 자리는 사실 길게 뻗은 여러 지류 세계관의 맨 끝자락에 불과하다. 그중에서도 일본 오토바이 라이더 스파이더맨은 가장 이질적이면서도 가장 쉽게 빠뜨려지는 한 페이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