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가 두중가오(杜忠誥)가 별세했다고 대만 문화부가 10월 29일 발표했다. 문화부는 향년 78세로 전하며 창작·학술·교육을 아우른 활동을 기리고, 총통의 공식 표창을 요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리위안 문화부장은 애도를 표하며 대만 서예의 발전과 계승에 기여한 점을 평가했다. ‘요청 예정’은 다음 절차를 뜻하며 표창령이 이미 내려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의 길을 돌아보면 붓과 먹은 일상과 분리된 기술이 아니라 독서, 가르침, 지속적인 변화와 연결된 작업이었다.
장화와 교원 양성에서 출발하다
두중가오는 1948년 장화현 피터우향에서 태어나 1964년 대만성립 타이중사범전과학교에 입학했다. 현재 국립타이중교육대학의 전신이다. 졸업 후 타이베이 난강구 주좡초등학교에서 가르쳤고, 이후 국립대만사범대학 국문학과에서 공부를 이어갔다. 교원 양성에서 고전 학문으로 향한 경로는 그의 서예 이력에 교실과 책상 양쪽의 무게를 더한다. 수상 목록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삶이다.
그는 계속 학교로 돌아갔다. 1987년 일본 쓰쿠바대학에서 예술 대학원 공부를 시작해 1990년 석사학위를 받았고, 2001년 국립대만사범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각 단계에서 예술과 문자가 만났다. 대만사범대가 2017년에 게재한 회고 기사에는 쓸 내용을 먼저 이해하고 붓을 통해 생각을 전하는 일을 중시했다는 기록이 있다. 생전의 역사 자료이며 이번 보도를 위한 새 인터뷰는 아니다.
붓 밖에 남긴 교육과 문자 연구
교육 활동은 국립대만사범대학, 국립대만예술대학, 국립타이베이예술대학 등으로 이어졌으며 고등학교 서예 교과서 편집·심사에도 참여했다. 문화부는 저서로 《書道技法123》, 《說文篆文訛形釋例》, 《漢字沿革之研究》 등을 들고 대만 미술 고전 총서의 서예 권 편저 참여도 소개했다. 제목들은 선의 표정 너머에 기법, 글자 형태, 문자의 역사라는 연구 과제가 있었다는 또 다른 관점을 제공한다.
문화부는 그가 전서·예서·해서·행서·초서를 넘나들며 새로운 실험을 장려했다고 회고했다. 전통과 변화를 양극단으로 나누기보다 여러 서체를 익히는 일과 자신만의 표현을 찾는 일을 긴 실천 안에서 함께 볼 수 있다. 국가문예상, 중산문예상, 전성미전 서예 부문 최고상과 영구 심사 면제 자격, 우싼롄상 서예 부문 등의 영예를 받았으며 2016년에는 2등 경성훈장을 받았다. 상은 성과를 기록하고, 교육과 저술은 다음 세대가 이어갈 실마리를 남긴다.
사진 세 장 속 독서와 필묵
보도자료의 사진은 그 이력을 일상의 크기로 보여준다. 한 장에서는 모자를 쓰고 연한 파란 옷을 입은 그가 큰 먹글씨가 있는 나무 탁자 뒤에 서 있으며 옆에는 대형 붓이 걸려 있다. 다른 사진은 창가 책상에 펼친 책과 안경을 함께 담는다. 젊은 시절 정장 차림의 흑백사진도 있다. 인물과 필묵, 독서 환경을 잇는 사진이지만 이번 자료는 각각의 촬영 연도나 탁자 글씨의 작품명을 밝히지 않았다. 특정 전시나 대표작이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창가 책상에 앉은 두중가오. 펼친 책과 안경이 보인다.문화부 자료에 포함된 젊은 시절 흑백 초상. 촬영 연도는 표시되지 않았다.
문화부가 열거한 작품에는 《趙甌北論詩絕句五首行草書屏》, 《洞山良价金言》, 《菜根譚》, 《誠·閒·樸》이 있으며 국립대만미술관과 타오위안시립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작품과 연구서, 교육 기록은 부고 이후에도 그를 다시 알아가는 통로가 된다. 이번 발표에는 추모전, 공개 고별 행사, 작품 전시 일정이 없다. 방문이나 추모 계획은 유족과 기관의 후속 공식 공지를 확인해야 한다.